켄 로치 감독님께 보내는 편지

친애하는 켄 로치 감독님께

안녕하세요. 우리는 한국의 강원도 원주라는 곳에서 활동하는 ‘아카데미의 친구들’입니다.

‘아카데미’의 친구들이라고 하니 왠지 ‘아카데미 시상식’과 관련이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사실 원주의 마지막 남은 오래된 단관극장인 ‘아카데미극장’에서 따온 말이랍니다.

1960년대 한국 극장의 가장 전성기였던 시절, 원주의 도심을 가로지르는 직선 도로를 따라 단관극장 5개가 줄지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멀티플렉스가 등장하고 세월이 흐르며 단관극장의 시대는 막을 내렸고, 아카데미극장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전쟁과 급격한 산업화의 아픔을 겪은 한국은, 오래된 관객들과 함께 숨 쉬어온 극장들의 원형을 많은 부분 잃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에서 원형을 간직한 몇 안 되는 극장 중 가장 오래된 아카데미극장의 철거만은 꼭 막고 싶었습니다.

아카데미극장은 원형을 보존한 60년 된 극장으로 문화사적, 영화사적, 건축사적으로도 근현대문화유산에 해당해 보존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시민들은 극장을 보존하고 재생하여 다시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기 위해 보존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시민들은 7년여의 공론화와 극장의 건물주와의 철거 공방이라는 산을 넘어 극장을 개방하며 아카데미극장의 미래를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다양하고 열정 있는 보존 운동 끝에 2022년 원주시에서 극장을 매입하였으나, 갑자기 바뀐 시장 때문에 2023년 극장 보존 정책은 돌연 철거 정책으로 바뀌었고, 결국 1년여의 싸움 끝에 극장은 철거되었습니다.

시민들은 극장을 지키기 위해 극장 주변을 띠로 두르며 띠잇기를 이어갔고, 원주의 도심을 가로지르며 행진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 전국의 영화인과 문화예술인들이 극장 보존 캠페인에 동참했고, 시민들의 보존지지 서명도 7천 명을 넘어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권력을 이길 수 없었던 시민들은 결국 무너져 내리는 극장의 꼭대기에 올라 자신의 몸으로 극장 철거를 막으려 했지만, 끝내 극장은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극장이 무너져 내렸지만, 시민들은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극장은 무너져도 시민은 무너지지 않는다’며 권력과의 싸움을 지속했고, 지금은 극장 철거를 저지하던 시민 24명이 업무방해죄로 재판에 회부되어 소송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많이 지치고 힘들기도 했지만, 극장이 무너지고 나서도 흩어지지 않고 모인 우리 ‘아카데미의 친구들’은 서로가 서로의 용기가 되어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당신의 영화에 대해 이야기 나누려고 모임을 합니다. ‘지미스 홀’을 보고는 많이 울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주인공의 모습이 참 우리와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고서는 불평등과 저항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돌아오는 7월 25일에는 야외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나의 올드오크’를 상영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