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아카데미극장은 1963년 개관하여 원형을 보존해온 원주의 마지막 단관극장이자, 지역 주민들에게는 극장을 넘어 생활과 기억의 문화공간이었다. 2016년부터 시작된 시민 주도의 보존 운동은 7년간 지속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시민사회·전문가·행정이 함께하는 민관협력형 지역문화 보존 모델이 구축되었다. 이러한 노력은 결실을 맺어 2022년 원주시가 시비 32억 원을 투입해 극장을 매입하였고, 문화체육관광부의 ‘유휴공간 재생활성화 사업’에도 선정되면서 국비 30억, 도비 9억, 시비 21억 등 총 60억 원 규모의 보존·재생 계획이 수립되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중앙정부 문화정책 기조가 기존의 지역 균형 발전에서 통제와 위계적 지원 체제로 급격히 전환되었다. 민선 8기 원주시 또한 보존 논의를 ‘혈세 낭비’라는 프레임으로 왜곡해 결국 철거로 방향을 틀었다. 시민들이 법적 절차에 따라 요청한 시정정책토론 청구는 주민등록번호, 본적지 등 과도한 개인정보 보완을 요구하며 묵살되었고, 끝내 극장을 지키려던 시민들은 형사 고발당했다. 아카데미극장의 철거는 지역문화 자산과 이를 지키려는 시민들을 국가 권력이 배제하고 범죄시한 사건이었다.

이 사례는 한국 사회에서 반복 되어온 문화예술 블랙리스트의 지역판이라 할 수 있으며, 민주적 협의 대신 권력적 폭력이 동원된 명백한 문화적 참사로 기록될 것이다. 특히 아카데미극장 강제 철거 과정에서 드러난 일련의 사건들은 지역문화 블랙리스트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구체적 사례로 볼 수 있다. 중앙정부 정책 기조의 전환, 민관협력 거버넌스의 붕괴, 위계적 통제 구조, 낙하산 인사와 행정 권력의 사유화, 국가범죄적 성격 등은 모두 블랙리스트적 통치의 요소를 충족하고 있다.

  1. 정책 기조의 전환과 지역문화 배제

아카데미극장의 보존·재생 계획은 지난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승인한 공공사업이었다. 그러나 정권 교체와 동시에 정책 기조가 바뀌었고, 지방정부 또한 개별적 검토와 정당한 명분 없이 형식적 의견 수렴으로 철거를 결정했다. 이는 지역문화 자산이 정책 변화에 따라 언제든 소거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자, 지역문화 정책의 취약한 구조를 드러낸다.

  1. 민관협력 거버넌스 붕괴

극장의 보존을 위해 시민과 전문가, 행정이 함께 설계했던 계획은 행정의 일방적 결정을 통해 무력화되었다. 민주적 협의 대신 행정 권력은 형사 고발과 강제 철거를 선택했고, ‘민관협력 거버넌스 파괴’의 전형이 되었다. 국가폭력적 방식이 수년간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고민해 온 협력적 공론장을 대체한 것이다.

  1. 문화현장의 위계적 통제와 하청구조화

아카데미극장을 지키려던 시민 주도의 활동은 제도적 지원에서 배제되었을 뿐 아니라 범죄화되었다. 이는 윤석열 정부가 지향하는 위계적 지원 구조, 권력 종속형 문화정책의 지역 현장 버전이라 할 수 있다. 문화정책이 권력을 향한 충성 여부에 따라 지원과 배제를 나누는 구조로 전락하면서, 시민의 자율적 기획은 제도적으로 고립되었다.

  1. 낙하산 인사와 인사 참사

원주시 문화재단 대표이사 자리에 시장 측근이자 비전문가가 임명된 사건은 지역 문화행정이 사적 권력의 도구로 전락했음을 상징한다. 특히 법정문화도시사업을 주관하던 위수탁 단체에 대해 ‘혈세 낭비·범죄’라는 프레임을 씌워 일방적으로 해체한 뒤 시 직영 운영으로 전환했지만 결국 무혐의로 결론이 났고, 사업 평가는 ‘최우수’에서 ‘미흡’으로 곤두박질쳤다. 이는 인사 실패를 넘어 제도의 붕괴로 이어진 전형적 인사 참사이다.

  1. 문화정책의 국가범죄적 성격

“국가범죄”란 권력이 제도를 동원해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하는 체계적 행위를 의미한다. 아카데미극장의 강제 철거는 이러한 정의에 부합한다.

① 정부가 승인한 60억 규모의 공공사업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며 행정절차의 신뢰성과 정책 일관성을 스스로 훼손했다.

② 극장의 철거는 단순한 건물 철거가 아니라 시민의 문화 향유권, 기억권, 도시권 등 헌법적 권리를 직접적으로 침해한 행위였다.

③ 행정 갈등을 민주적 협의와 공론장이 아니라 형사고발과 재판으로 처리함으로써, 시민과 문화예술인을 정책의 협력자가 아닌 범죄자로 낙인찍었다.

즉, 특정 지자체의 일탈이 아니라, 윤석열 정부의 문화정책 기조 변화와 맞물려 전국적으로 나타난 구조적 현상의 일부로서, 지역문화현장을 소거한 국가범죄의 성격을 띤다고 볼 수 있다.

아카데미극장 철거는 지역문화가 지자체장의 단독 권한에 의해 얼마나 손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강제 철거 과정에서 직권 남용과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이 이루어졌으나, 불송치로 종결된 사실은 현행 제도로는 권한 남용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묻기 어렵다는 점을 드러낸다. 나아가 중앙정부의 정책 기조가 바뀔 때마다 지역 문화예술이 반복적으로 위축되고 파괴될 수 있는 구조적 위험이 여전히 존재한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우선 예술인권리보장법에 지자체장의 권한 남용을 처벌하는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 지자체장은 문화예술 정책을 집행함에 있어 공정성과 투명성을 유지할 의무가 있으며,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위해 권한을 남용할 경우 형사적·행정적 책임을 져야 한다. 또한 문화예술 단체와 시민에게는 이러한 권한 남용 행위에 대해 독립적으로 조사와 고발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지역문화 보호, 시민의 문화기억권 보장, 문화정책의 공정성을 제도적으로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예시] 제00조 (지자체장의 권한 남용에 대한 처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