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의 기억을 지키는 일이 죄가 되는가? 원주 아카데미극장 지킨 시민 24인 실형 구형, 문화유산 지킨 시민은 무죄입니다!
1963년 개관한 원주 아카데미극장은 60년간 지역 시민들과 함께한 상징적인 문화공간이었습니다.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역사적 흔적과 건축 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 극장은 지역의 소중한 문화유산이자, 공동체 기억의 중심이었습니다. 시민들은 이 공간을 지키기 위해 7년 동안 자발적인 보존 운동을 이어왔고, 그 과정에서 1억 원에 달하는 시민 모금을 이끌어내며 극장 보존의 의지를 지역 사회에 증명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2022년 원주시가 극장을 매입하였고, 문화체육관광부의 유휴공간 재생 활성화사업에도 선정되어 총 39억 원의 국비와 도비가 확보되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해 취임한 민선 8기 원강수 원주시장은 극장의 문화적 가치를 부정하며, 극장 부지에 주차장과 야외공연장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일방적으로 발표하였습니다. 그러나 도보 5분 거리 이내에 이미 야외공연장이 존재하고, 극장이 문화재로서 시민적 합의를 거쳐 보존 대상으로 자리매김해온 점을 감안할 때, 이러한 철거 전환 정책은 타당성도, 공공성도 결여된 부당한 행정 결정이었습니다.
이에 시민들은 원주시 조례에 따른 시정정책토론을 정식으로 청구하며, 절차에 따라 행정과의 숙의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원주시는 주민등록번호와 본적지 기재 등 과도하고 불필요한 개인정보 보완을 요구하였고, 국민권익위원회의 시정권고와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위법성 지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토론 청구를 반려했습니다. 사실상 숙의와 참여의 통로를 행정이 차단한 것입니다.
이후 시민들은 극장 철거를 막기 위해 현장에 모여 평화적으로 항의했고, 일부는 극장 옥상에 올라 철거 중단을 요청했습니다. 원주시는 경찰과 용역을 투입해 현장에 있던 시민 24명을 현행범으로 체포했고, 이후 형사 고발을 통해 이들에게 업무방해, 건조물침입, 특수건조물침입 등의 혐의를 적용하였습니다.
지난 7월 14일, 검찰은 이 시민들에게 최소 수백만 원의 벌금에서 최대 징역 2년에 이르는 실형을 구형했습니다. 문화유산을 지키고자 했던 이들이 하루아침에 형사 피고인이 되었고, 사법적 처벌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의 행위가 정당한 시민의 문화적 권리와 표현의 자유에 해당함을 명확히 인식하며, 재판부가 이 점을 엄중히 고려하여 무죄 선고할 것을 촉구합니다.
이 사건은 특정 지역의 갈등을 넘어, 대한민국 사회가 문화유산 보존과 시민 참여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대한 사례입니다. 최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는 다큐멘터리 감독 정윤석 씨가 폭동 현장을 기록했다는 이유로 실형을 구형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기록자의 존재를 범죄로 간주하고, 예술과 기록의 자유를 법적으로 제한하는 흐름은 아카데미극장을 지킨 원주 시민들의 사례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법과 제도는 공동체의 기억을 지키려는 시민의 실천을 침입으로, 점거로만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는 문화적 실천의 공공성과 시민 참여의 정당성을 고려하지 않는 협소한 시각이며,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와 시민권의 정신과도 배치됩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21조는 언론, 출판, 예술 표현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명시적으로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일어난 일련의 사건은 이러한 헌법적 권리가 행정력과 형벌권에 의해 위축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민의 표현권, 기록권, 문화권이 법정에서 범죄로 취급받는 현실은 민주주의의 퇴행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시민의 문화적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호하는 일은 입법부의 책무입니다. 시민 참여가 범죄화되지 않도록 하고, 문화유산 보존 과정에 숙의 절차가 반드시 보장되도록 하며, 표현과 기록의 자유가 행정력에 의해 침해되지 않도록 관련 법률과 제도를 점검하고 개선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사법부는 이 사안을 단순한 법률 위반이 아니라, 문화권과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민주주의의 본질적 문제로 인식해야 하며, 재판부는 문화예술을 지킨 시민들에게 공정하고 정의로운 판결을 내려야 합니다.